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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봄 생태계의 헤게모니 – 공공성 논쟁

  • 관리자 2019-06-17 10:55 hit : 1860 link

  • 돌봄 생태계의 헤게모니 공공성 논쟁

     

    시 빈민지역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공부방을 이야기 하려면 고달팠던 부모세대의 삶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맞이하면서 언덕너머 달동네로 쫓기고 쫓겨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된 가난한 마을에서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인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의 교육문제나 문화생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른바 달동네 아이들은 학교가 파한 후에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놀거나 방치되기가 일쑤였고 해가 기운 저녁시간이 되어 

    부모가 돌아올 무렵에서야 귀가하거나 혹 간에는 친구들이 다 돌아간 뒤에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언덕배기에서 쓸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그것은 나았다. 밤이 되도록 부모의 귀가가 늦어진데다 텅 빈 스레트 지붕을 무섭게 두들기는 

    비라도 내리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이 풍경은 과거 도시 빈민층을 대상으로 공부방이 

    만들어지던 시절, 돌봄의 대상자가 84만 명에 이르는 가난이 깊이 뿌리내려 있던 달동네의 모습이자 비로소 한 세대 전의 풍경이다.

     

    역사를 직선의 구조로 보고 시대와 연도를 점으로 찍어서 그 지점에 관제탑을 세워 본다면 지금처럼 정부에서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 아동수당을 지원하는 2019년도의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불과 한 세대 만에  1인당 국민소득도 최소 1만 달러 

    이상의 큰 성장을 거두었으니 급격한 사회 변화와 경제적 부흥으로 과거 의 인식만으로  지금의 돌봄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방과후 공부방의 시초라고 하는 산돌공부방이 시작된 1984년 경 부터 법제화 된 2004년도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아이들의 

    돌봄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대개 625이후 아동복지의 중심에 있었던 고아원이나 시설 중심의 정책이 주를 이루었고 영유아 

    보육 관심을 받는 정도였다. 민간에서 시작된 공부방 운동은 그 무관심 속에서 잡초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배회하고 있는 아이들,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면서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 가정불화나 경제적 타격으로 인한 

    가정 해체 속에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달동네 교회의 한켠 다락방에서 시작된 방과후 공부방은 아이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성장과 사회구조가 많이 변한 지금에도 여전히 1980년대의 빈곤 정책과 그 시대적 사고에 머무른 채 

    지역아동센터의 정체성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시대적 상황도 달라졌고 국민적 정서, 그리고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과거, 빈곤과 

    생계문제에 대한 인식, 인간다운 삶과 문화적 욕구의 증가,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아동복지도 품질을 이야기할 만큼 인식이 달라졌다

    사실,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되던 2004년도 노무현 정부 당시의 돌봄 정책의 기저에는 사교육 문제 해소와 교육의 균등한 기회가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온종일돌봄교실’ 도 늘, 학교 중심이었다. 이는 법제화 이후에도 민간 운영의 

    아동복지시설은 정부의 부담이었다 민간이 다수인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정부의 통제가 쉽지 않고 재정적 부담이 가중된다거나 

    운영의 투명성을 이유로 공공성이라는 헤게모니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온종일돌봄체계를 학교중심으로 개편 

    했지만 교육계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은 행정부로 넘어오는 보편 돌봄의 시즌2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정권 3기 동안의 학교중심 

    정책은 실패를 자인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돌봄의 체계는 학교중심에서 마을중심으로 전환시켰는데 15년의 돌봄 토착민인 지역아동센터가 마을 돌봄의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순간에 외면하는 정부의 태도는 여전하다.  더구나 이 정부 들어와서 다함께돌봄

    (지역아동센터와 같이 보건복지부 내 같은 국같은 과가 담당)이라는 새로운 돌봄 체계를 지역아동센터의 사업 안내를 참고해 

    정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는 빈곤가난, 취약, 저소득으로 대비되는 이미지로 더 낙인을 키웠다

    가난한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민간이, 지방 정부는 일시 이용시설로 개방해 정부가 말하는 공공성에 대해서 의문을 낳게 만들었다

    다함께 돌봄 정책으로 마을복지의 새로운 물꼬를 튼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돌봄 생태계를 무리하게 재편함으로써 

    기존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지역 내에서 감정적인 충돌이나 다함께돌봄으로 갈아타는 현상들이 발생한다

    이는 방과후돌봄에서 종사하는 이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데 근거한다

     

    나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매우 관심이 있다. 이는 신도시나 재개발 등과 같이 이주민을 양산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입주하는 구조가 

    사람간의 많은 관계를 끊고 단절되게 하며 지역사회의 강점을 모두 고사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이 도시 생태계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아동센터가 가지고 있던 돌봄 생태계의 기여나 구조화된 강점들을 모두 배제하고 정부가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공성을 거론하는 것은 모순된 헤게모니다. 

     

    돌봄 체계에서 정부가 말하는 공공성은 공공기관이 운영하거나 법인이 운영하면 공공성을 확보했다고 보는 형식적 공공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내용적인 공공성 면에서는 평가와 교육,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종사자의 자격이나 시설 기준 등이 수반되면서 내용이 더 충실해진다

    그리고 그 결과 값이 시설에 대한 평가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2018년도 기준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들은 동일하게 평가를 86, 87점대의 

    고득점을 받은 반면에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공립형의 경우 40점대 중반의 매우 미흡의 점수를 받았다. 이를 공무원들의 순환보직이 

    원인이라고 한 기사도 있으나 사실상 생태계의 기본적인 강점과 순기능들을 파괴하고 단순히 형식적 공공성 모델만을 가지고 통제하는 

    실패의 근거가 된다. , 민이 하면 실패하고 관이하면 성공한다는 협치의 실패는 여전히 1960년대 사고에 머무는 관료 행정의 결과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업의 실패에 용서할 수 있어도 협치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 라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이번 정부의 방과후 돌봄은 

    협치의 실패다. 시대가 바뀌어 돌봄의 구조가 바뀌었고 여성의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으로 인한 M자 곡선의 경력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돌봄, 유리천정을 해소하기 위한 돌봄, 맞벌이가 필수인 현 시대의 돌봄, 외부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를 위한 돌봄, 문화적 욕구 충족과 

    여가를 위한 돌봄으로 이미 우리사회의 돌봄에 대한 개념 자체도 180도 바뀌었다.

     

    공공성을 말하기 전에 정부는 돌봄에 대한 차별 없는 통합과 평등, 더 나아가 돌봄 생태계를 파괴함으로 오는 불합리를 예방하는 적극적인 

    협치를 통해 펼쳐야 한다. 공공성은 정부기관의 운영이기에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성(共同性) ,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 서비스로서의 가치가 부여된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성이라고 인정하고 싶다. 나는 그것이 돌봄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의 

    기본 조건이라고 믿고 있다.

     

    돌봄 헤게모니는 지역아동센터의 30년 간 땀의 역사를 부인한다.  정부는 마땅히 그 강점과 순기능을 되살리고 생태계 복원을 위한 

    건강한 재건을 기대한다. 돌봄의 4대강에서 매몰비용을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2019. 6  옥경원 대표